지난 2월 29일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방영 후 여자경 지휘자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이날 방송은 방송인 유재석이 하프 연주에 도전, 오케스트라와 함께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담았다.
여 지휘자는 유재석의 연주를 주의 깊게 듣고 곧바로 포인트 레슨을 진행, 합주 연습을 리드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부드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모습으로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받은 여자경 지휘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모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비엔나국립대학교에서 지휘과 학사와 석사, 음악학 박사를 취득한 후 비엔나국민오페라극장 오페라코치, 모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강사,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전임지휘자,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본 공연보다 첫 리허설을 더욱 중요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는 연주보다도 첫 리허설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합니다. 리허설을 위해 악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지휘자가 잘 준비되어 있어야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주어진 리허설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겠지요. 오케스트라는 지휘자를 5~10분만 보면 그들이 따라가야 하는 지휘자인지 아닌지를 바로 판단합니다. 준비 없는 지휘자가 포디엄에 서면 안 되는 이유죠.”
5~10분 동안 어떻게 연주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귀신이에요. 어떤 지휘자인지 금방 알죠. 그래서 첫 리허설이 더 긴장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할 뿐이죠. 지휘자와 연주자는 악보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니까요.”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했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충분한 공부를 하는 과정이죠. 곡에 대해 지휘자가 제대로 알아야 연주자들과 효과적인 리허설을 할 수 있어요. 곡의 배경, 당시 작곡가의 상태, 곡의 구조, 화성적 내용, 악기 간의 밸런스 등 모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분을 연구합니다. 필기하면서 익숙할 때까지 악보를 공부해요.”
연주자들이 이런 노력을 알아본 건지, 오케스트라가 뽑은 지휘자 상을 4번이나 받았다.
“저에겐 참 의미 있고 기쁜 상입니다. 저는 오케스트라가 지금 어떤지, 연주자들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빨리 파악하는 편인데, 이 점도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항상 연주자들을 보며 저 또한 많은 것을 배워요.”
작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지휘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지휘자를 꿈꿨나.
“작곡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작곡가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곡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재창조해 무대에서 보여주는 지휘자가 저에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음악의 길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학교 오페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더 깊이 오페라를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 지휘과에 입학했습니다. 전공은 바뀌었지만 작곡 공부를 했던 것이 지휘를 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밑거름이 됐어요.”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동양인 여성 지휘자’로서 현실의 벽을 느낀 적은 없었는지.
“외국에서는 ‘동양인 여성 지휘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죠. 물론 차별도 있었지만, 지휘자가 아니라 해도 외국에서 동양 여성에 대한 차별은 있잖아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나마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 지휘자들이 많아져서인지 낯설게 보는 시각은 조금 사라진 것 같아요. 특별히 여자라서 어렵고, 남자라서 쉬운 건 없다고 생각해요.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별 상관없이 어려운 길을 지나야 해요.”
이젠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꾸준한 러브콜이 오고, 유럽 언론에서도 함께하고 싶은 지휘자로 언급될 만큼 인정받고 있다. ‘좋은 지휘자’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좋은 지휘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기 위해 마음속에 새기는 규칙이 몇 가지 있어요. 충분히 잘 준비하고 포디엄에 설 것, 인간을 사랑할 것, 연주자들에게 예의를 다할 것, 지루하지 않은 리허설을 할 것, 실제 연주에서 청중보다 연주자들에게 정성과 감동을 줄 것 등이죠.”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많이 취소되고 있다. 혹시 올 하반기 계획이 있다면.
“4월까지는 많은 연주들이 취소됐어요. 곧 건강한 무대가 다시 열리기를 간절히 희망해요. 5월 이후 하반기에는 KBS교향악단과 함께하는 5.18 40주년 기념행사 및 한전연주회, 대구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 포은아트홀 마티네콘서트 등이 예정돼 있습니다. 또 교보문고 ‘북모닝CEO’에서 ‘쉬운 일상생활 클래식이야기’ 방송을 통해 클래식을 재미있게 소개해드릴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글=김채린 학생기자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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