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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Nobel Prize] 중견기업의 평범한 40대 연구원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다나카 고이치’ 2021-11-19 10:06:39
작성자  동문회보 webmaster@hanyangi.net 조회  618   |   추천  91

노벨상은 스웨덴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인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매년 가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보다 흥미로운 건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이문수 학생기자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는 ‘연성 레이저 이탈 기법’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이 기법을 이용하면 고분자 단백질의 종류와 양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그의 연구는 암 조기 진단, 신약 개발 등에 이용되며 생명공학과 의학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당시 전 세계적으로 더 큰 이슈가 된 것은 그의 ‘스펙’이었다. 최초의 학사 출신 수상자로 중견기업의 평범한 40대 연구원. 그는 연구실에서 막 나온 듯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를 보여 큰 화제가 됐다.

다나카 고이치는 도호쿠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생명공학 기기를 만드는 시마즈제작소에 입사했다. 1년 6개월 후 바이오 연구팀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레이저 이온화에 의한 고질량 이온의 생성과 그 측정 기술의 연구’가 시작됐다. 단백질 분자의 질량을 측정하려면 레이저로 이온화해야 한다. 그런데 레이저를 쏘면 단백질이 파괴되기 때문에 이를 막는 보조제가 필요했다. 그는 삭발까지 하며 끈질기게 연구했다.

1985년 2월 어느 날, 다나카 고이치에게 갑작스러운 행운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실험을 준비하던 그는 실수로 아세톤이 아닌 글리세린을 코발트와 섞어 보호 용액을 만들었다. 비싼 코발트가 아까웠던 다나카는 용액을 버리지 않고 레이저를 조사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신호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단지 오차 정도로 취급해도 좋을 만한 변화였고, 동료들은 단순한 노이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나카는 우연을 놓치지 않고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연성 레이저 이탈 기법’을 발명했다.

“도대체 다나카 고이치가 누구야?” 2002년 10월 9일 시미즈제작소의 전화가 일제히 울렸다. 다나카 고이치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발표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회사의 몰래카메라라고 생각했지만 몰려든 기자들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노벨상 수상자임을 실감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그는 하루아침에 일본 열도를 뒤흔드는 대스타가 됐다.

다나카 고이치는 연구 이외의 일에 시간을 뺏기기 싫어서 관리직이 될 수 있는 승진 시험조차 거부했고, 만년 주임이었다고 한다. 그는 매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성실하게 연구에 전념했다. 다나카는 기자회견에서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모두가 지나치는 우연을 붙잡고 끝까지 연구했기에 가질 수 있는 행운이 아니었을까.

 

 

[출처] [Behind Nobel Prize] 중견기업의 평범한 40대 연구원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다나카 고이치’|작성자 한양대동문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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