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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숙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2021-09-28 15:50:58
작성자  동문회보 webmaster@hanyangi.net 조회  3342   |   추천  135

편견 딛고 세상 누빈 여성 건축사

 

조인숙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사진 위부터) 201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40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 참석한 조 동문. 2017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제41차 WHC에서는 생애 첫 성명statement을 발표했다. 맨 아래 사찰은 그가 신축설계한 대한불교 천간사.

 

 

“여자가 무슨 공대를 가느냐?” 1972년, 건축과에 가겠다는 고3 여학생의 말에 쏟아진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여성이 건축을 할 수 있다는 인식조차 없던 시대였다. 진로 적성검사 공간지각력 부문에서 월등하게 높은 점수가 나온 그 여학생의 등을 밀어준 건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였다. “조인숙! 건축과 갈 수 있지. 건축은 한양공대를 나와야 한다카이.” 그로부터 50년이 흘렀다. 모교 건축학과 73학번으로 입학한 조인숙 건축사는 1977년 4학년 2학기 취업해 시작한 건축사사무소 생활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984년 건축사시험에 합격 후 쉼 없이 일하고,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국제 무대에서 한국 건축의 남다른 특징을 알리는 그를 만났다.

조 동문은 일반 건축 분야에서도 왕성히 활동했지만 무엇보다 불교 건축을 중심으로 전통 목조건축 문화재를 수리하고 보존하는 일에 힘써왔다. 2000년 경기도 문화재자료 95호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의 안채 보수를 계기로 한옥 보수에 실질적인 눈을 떴다. 이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한무숙문학관 수리를 맡아 2011년 아시아건축사협의회(ARCASIA) 건축상을, 같은 해 대한불교 천간사 신축설계로 국토해양부로부터 ‘제1회 올해의 한옥상’을 받았다.

그의 문화재 사랑은 뿌리가 깊다.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공부로 축적한 내용이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조 동문은 말한다. 1970년대 학생 시절부터 고적 답사, 국립박물관 특설강좌를 찾아다니며 한국 문화와 미술사를 틈틈이 공부했다. 학구열이 높았던 그는 1986년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개업 후 10여년이 흐른 1997년 성균관대 대학원 건축학과에 들어가 늦깎이 석사를 시작했다. 한국 건축사, 문화재를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2000년 석사를 마치고 이듬해 독일 뮌헨대 예술학과 박사과정 교환장학생으로 재학하면서 뮌헨공대에서 고대건축사 및 문화재학 공부를 함께했다.

이렇게 쌓은 식견을 바탕으로 다양한 학술 발표와 특강을 진행했다. 2001년 일본 국제교류기금 초청으로 ‘오키나와 포럼’에서 서울의 북촌 보존 사례 발표를 했다. 이어 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HMS 콜로키움’에 초청받아 ‘한국의 전통 건축’ 발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한국 건축 알리기에 나섰다. 2010년부터는 독일 현지에서 한국 정자 건축에 대한 강연을 4~5차례 꾸준히 진행했다. 이를 계기로 2015년 베를린에 한국 정자 ‘통일정’을 설계하기도 했다. 또 한국에 온 외국 내빈에게 각국 대사관과 연계해 전통 건축을 소개하고, 건축사 대상 한옥설계전문인력양성과정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다.

‘국제통’이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다채로운 국제 활동도 눈에 띈다. 그는 국제건축사연맹(UIA) 내 건축유산·문화정체성(Heritage and Cultural Identity) 워크프로그램의 총괄 국제 공동디렉터다. 한국인 최초, 비영어권 출신 최초다. 조 동문은 2019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WHC)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UIA 대표로 참석해 성명statement을 발표했습니다. WHC는 국가 간 협약을 통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자연·문화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거나 보호 조치하는 문제를 논하는 외교의 장입니다. 성명은 불과 2분밖에 안 됐지만 장시간에 걸친 치열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우리 건축사들이 유산 보호를 위해 해야 할 일과 그 의지를 재천명한 것이죠.”

조 동문은 어떻게 국제 무대에 뛰어들게 됐을까. 첫 공식 해외 출장은 1988년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된 제8차 국제여성건축사회(UIFA) 대회다. 유학이나 해외 경험 한번 없이 단지 외국이 궁금해 참가했다가 큰 문화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박물관과 책으로만 접하던 건축의 실체에 매료됐다. 우물 안 개구리를 바깥 세상에 눈뜨게 만든 행사였다. 그 후 불가리아, 중국, 싱가포르, 독일,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 파키스탄, 이탈리아 등 각국을 다니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 자문·심사 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회의 이사이자, 국제역사구조수리보존학술위원회(ISCARSAH) 부회장으로도 세 번째 임기를 지내고 있다. 더 많은 국내 건축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먼저 등재 동기의 진정성과 문화재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조 동문의 생각이다. “최근 유네스코는 불행한 기억을 담은 유산(다크 헤리티지)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국주의의 산물인 소록도를 근대문화재가 아닌 하나의 마을로서 국제 공조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숱한 장애물을 만났다. 조 동문이 처음 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할 때만 해도 건축 분야에 종사하는 대졸 여성은 매우 드물었다.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던 시절 실무를 했다. 국내에도 유능한 여성 건축사는 많지만, 가정 때문에 장기간 외국에 나가 있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조 동문 역시 동료나 직원들 중 사무소를 운영하며 시댁과 육아에 매몰되는 여성 건축사를 많이 봐왔다. 해외에 나가 마주하는 언어 장벽, 문화적 차이도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원동력은 그의 도전 정신에 있다. 기회만 되면 끊임없이 공부에 도전했다. 도전한 결과가 늘 좋진 못했다. 때로는 주변의 오해나 시샘 때문에 부당하게 성과를 뺏기기도 했다. 그때마다 되새긴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우뚝 솟은 산은 홍수가 나도 물에 떠밀려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이면 조 동문이 하고 있는 모든 국제 활동의 임기가 만료된다. 이제부터는 천천히 삶을 단순화하고 정리할 계획이다. “ICOMOS-ISCARSAH 임기가 끝나기 전 내년 한국에서 국제 워크숍을 한 번 더 열고, UIA 워크프로그램도 WHC에서 약속한 가이드라인의 기틀을 마련해 후배들에게 연결해주고 싶어요. 올해 국·영문 ‘Heritage Walks’, 오래 전 절판된 ‘음예공간예찬(타니자키 준이치로 저)’ 출간도 마무리하려 합니다. 지난 7월 15일 새로 위촉된 문화재청 초대 문화재수리기술위원회 위원 활동은 그간의 연구와 실무를 멋지게 마감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강승민 학생기자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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