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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함께하는 문화재 탐방] 수원화성, 위민정신을 품은 조선의 신도시 2021-07-20 13:18:24
작성자  동문회보 webmaster@hanyangi.net 조회  633   |   추천  104

문화재는 글이 없는 역사책과 같다. 문화재가 품고 있는 건축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옛 선조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민경산 학생기자




 

▲수원화성 측면 전경 / 출처 : 문화재청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과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문화재로 알려져 있지만, ‘위민정신의 표본’이라는 가치도 지니고 있다. 수원화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조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신도시 계획에 수원이 선정된 건 조선 후기 실학자 유형원의 영향이 컸다. 그는 반계수록을 집필하며 다음과 같이 수원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수원은 교통이 편리하고 물산이 집합하는 곳이기 때문에 수원을 읍치로 삼으면 조선이 번창할 수 있다.” 이를 참고해 정조는 팔달산 아래 수원화성을 건설했다.

수원화성은 당시 전쟁에 주로 사용된 무기인 화포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에 적합했다. 화강암으로 지어진 기존 성들은 화포 공격을 받으면 다른 부분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어 무너지기 쉬운 구조였다. 하지만 수원화성은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화포에 맞은 부분만 구멍이 뚫렸다. 이 부분만 메우는 방식으로 빠르게 보수하면 성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정조의 위민정신은 수원화성의 건축 과정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수원화성 건축의 일등공신은 거중기와 녹로다. 이 기계들은 오늘날의 타워크레인처럼 건축 자재를 운반하고 축조하는 데 사용됐는데, 이전에 사용하던 장비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도 작동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덕분에 10년으로 예상했던 공사 기간을 2년 10개월로 단축시켰고, 조선의 백성들은 노역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수원화성의 혁신은 정조가 실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조는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실학의 발전과 전파에 공을 들였다. 수원화성은 실학의 빛나는 열매이자 개혁군주 정조의 위민정신이 담긴 문화재이기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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